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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_안보윤 작가 책 리뷰 사회가 품고있는 눅눅함에 대한 소설

마음씀씀이 2024. 5. 6.

 

어른들의 눈초리에 자책하는 아이들.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리고 마는 사회가 품고 있는 눅눅함에 대한 소설

소설 여진 속 한 장면을 나타낸 이미지

 

★ 여진 한줄평

우리 사회는 질타의 대상을 잘못 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질타 대상의 인생은 파멸한다.


★ 여진 세줄 요약

1)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뛰놀다가 층간소음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2) 윗집 노부부를 살해한 아랫집 남자는 법적 책임을 받으나, 주변 어른들의 눈초리는 층간소음을 발생시킨 아이들을 향한다.

3) 윗집 아이들과 아랫집 남자의 아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토록 스스로를 자책하며 산다. 

 

★ 여진 긴 리뷰

리뷰를 시작하며

 

오늘은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꽃가루를 씻어내는 비가 줄곧 내리는 하루였습니다.

오늘 같은 날에 읽었기에 많은 여운을 남기는 안보윤 작가의 여진에 대한 줄거리와 저만의 리뷰를

제게 남은 눅눅함이 없어지기 전에 남겨놓고 싶습니다.

 

EBS 뉴스에서 한 안보윤 작가의 인터뷰 내용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크고 작고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가장 힘들고 절망스러운 사건들이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누군가에게 또 위로받거나 위로해 주려고 애쓰면서 기어코 살아간다는 인간의 어떤 의지 같은 것이 굉장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2022.08.01. EBS 뉴스 인터뷰 내용 발췌 -

 

인터뷰를 보고 나니 여진이라는 책은 '기어코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구나, 그래서 내 기분이 이렇게 눅눅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여진입니다.

저는 이 제목이 '큰 지진이 있은 후 뒤따라 일어나는 작은 지진'을 뜻하는 여진이라는 단어의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명의 아이는 큰 사건 이후에 뒤따라 일어나는 자책감들을 여진을 느끼듯이 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책의 줄거리

 

1부

- 아랫집 이야기 -

 

아래층에는 아빠, 엄마, 아들 하나로 구성된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원양어선을 타고 일을 하러 갔다 와서도 돈을 벌어 돌아오기는커녕 그 배에서 도박으로 다 잃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그런 아버지입니다. 집안에서도 각종 가구를 깨부수는 덕에 집에는 온전히 남아있는 물건이 없습니다. 그 탓인지 엄마는 한없이 무기력해져 있습니다. 14살의 어린 아들은 비록 아빠를 아빠라고 제대로 불러본 적도 없을 정도로 유대감은 없지만,  아빠가 치고 다니는 사고의 뒷수습은 도맡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아빠는 슈퍼에서 소주를 훔치다 걸렸는데, 오히려 소주병을 다 깨부수며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아들은 익숙하게도 용서를 구하기에 가장 좋아 보이는 헐렁한 잿빛 남방을 걸쳐 입고 어머니가 건네준 오만 원을 가지고 슈퍼에 사과하러 갑니다.

슈퍼주인은 분이 풀리지 않은 채로 오만 원을 받아 들고 턱으로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있는 쪽을 가리킵니다.

아들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집고 청소를 하려던 순간, 옆에서 두부를 계산하려던 할머니가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다 다친다"

"괜찮아요. 저는"

"안 괜찮아. 내가 해줄 테니 저리 가 있으렴"

"아니에요, 제가..."

"그러기에 너는 너무 어리잖니"

 

'그러기에 너는 너무 어리잖니..'

소년은 평생에 들어본 적 없는 어른이 건넬 수 있는 따뜻한 한마디에 적잖이 놀랍니다.

그 후 할머니와 소년은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다시 만났고, 그렇게 소년은 윗집에 사는 할머니에게 아이로서 사랑받는다는 감정을, 세상에 이렇게 따스하고 달달한 맛이 있음을 배웁니다.

 

- 윗집 이야기 -

 

윗집에는 조부모와 손주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손주 남매 중 누나는 동생에게 도도두두 놀이에 대해 알려줍니다.

한 사람은 도도도도 하고 앞발만 사용해서 도망치고, 한 사람은 두두두두 하고 뒤꿈치만 사용해서 잡는 술래잡기 놀이입니다.

도도두두 놀이를 육십육 번 하게 되면 무시무시한 저주를 받게 된다는 소문을 알지만, 훗날 놀이를 한 횟수가 헤아려지지 않을 정도로 남매는 도도두두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도도두두놀이를 육십육 번 이상 한 저주일까요. 가뜩이나 예민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아랫집 남자가 느끼기엔 쇠공으로 천장을 내리 치는 듯한 남매의 도도도도 두두두두 발 구르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노부부를 살해합니다.

아랫집 남자의 재판에서 그 살해의 원인이 쇠공으로 치는 듯한 윗집의 소음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주변 어른들은 정말 그 애들이 문제였을까 의심하다가 점차 확신을 갖게 됩니다.

남매를 향하는 주변 어른들의 차가운 의심과 허울뿐인 동정의 눈빛.

그렇게 남매는 자신들이 조부모를 죽인 것이라며 조부모의 장례식에서도 자신들의 뛰는 심장소리마저 감추고 싶어 심장을 움켜쥐며 숨죽입니다. 어른들의 눈빛으로 더 크게 만들어진 두 남매의 무거운 자책감은 어른이 되어서 까지 짊어지고 살게 됩니다.

2부

- 윗집 할아버지의 동화이야기 - 

 

윗집 할아버지는 과거 동화 작가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작품 중에는 동화 치고는 끝맺음이 묘한 작품이 있었고,

아랫집 소년은 비상계단에서 윗집 할머니에게 이 동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동화는 한 남자가 세계를 떠돌면서 사람들의 슬픔을 지워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슬픔을 지워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대신 가져가는 것이었고,

그 슬픔들은 남자의 몸속에서 잘각잘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주 무거운 것이 되었습니다.

남자의 몸 안에 슬픔이 늘어가던 어느 날부터는 부우웅 하는 뱃고동 소리를 내며 슬픔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큰 울음소리를 내며 세계의 끝을 향해 걷는 남자 이야기라고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 허무맹랑한 동화책은 시원하게 망했고, 이후 할아버지는 사십 년째 바둑만 두며 푹 쉬었습니다.

하지만 아랫집 소년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왜 남자의 슬픔을 지워주는 사람은 없었을까?'

'그렇게나 시끄러운 슬픔을 왜 다들 모른 척했을까?'

"이 동화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외롭고 슬픈 이야기예요."

 

3부

- 조부모의 장례식장 이야기 -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동화 속 그 남자가 등장합니다.

누나는 그를 신이라고 알아보고는 자신의 슬픔을 없애달라고 합니다.

동화 속 슬픔을 가져가는 남자는 누나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반짝 누나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순간 그 슬픔을 대신 가져갔습니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있던 아랫집 소년은 그 남자를 쫓아가 자기 엄마의 슬픔을 지워달라고 청하지만 슬픔을 가져가는 남자는 소년에게 가득한 슬픔을 알아보고는 소년의 슬픔을 지워주겠다고 합니다.

 

"네게도 슬픔이 가득하구나. 엄마의 슬픔은 엄마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렴. 어른이니까 그쯤은 할 수 있겠지. 대신 네 슬픔을 지워주마.

"나는 안 돼요"

"사과해야 하니까 나는 안 돼요."

"사과? 누구에게?

"할머니에게도 저 애들에게도 모두에게 사과해야 해요. 그러니까 내 슬픔은 지울 수 없어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소년에게 자신과 함께 갈 것을 말했고, 아랫집 소년은 그 남자의 손을 잡고 떠납니다.

 

 

- 어른이 된 아랫집 소년, 윗집 남매에 대한 이야기 - 

 

슬픔을 가져가는 남자의 손을 잡고 떠났던 아랫집 소년과 윗집 남매는 성인이 되었고, 죄책감을 갖고 기어코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남매는 할아버지의 동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왜 그렇게 남의 슬픔을 집어삼킨 걸까. 감당도 못 할 거면서"

"어쩔 줄 몰랐던 거 아닐까"

"슬픔에 짓눌린 사람을 돕고는 싶은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무작정 삼켜버린 건지도 모르지"

"설마 그 정도로 멍청한 이유겠어?"

 

이 대화는 세 아이에 대한 묘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부모의 죽음으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을 돕고는 싶은데, 어쩔 줄을 몰라 무작정 본인들이 짊어지겠다고 생각한 세 아이들은 그 짐을 성인이 되어서도 내려놓지 못합니다.

 

대학에 다니는 윗집 남매 누나는 룸메이트를 구할 때 발이 통통해서 걸을 때 소리가 안나는 조건을 보는가 하면, 어느 순간이 되면 도도도도 하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몇십 분이고 걷고 뛰고를 하는 불안정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파트타임 일을 이것저것 하며 지내는 윗집 남매 동생은 세상 누구의 관심을 받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동화 속 남자를 따라간 후 슬픔을 가져가는 남자가 된 아랫집 소년은 그야말로 슬픔에 짓눌린 사람을 돕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무작정 삼켜버리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안보윤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정상적인 성장이 멈춰버린 세 아이들을 통해 부당하게 죄를 전가하는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며, 충분히 사회화할 어떤 과정이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 버린다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습니다.

 

조부모 살해의 직접적 원인이 아이들의 도도두두 놀이로 인한 층간소음이 아니라, 아랫집 아빠의 불안정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재판에서 공공연히 드러난 아랫집 남자라는 범죄의 직접 가해자 이외에 감춰진 원인 따위를 찾아내고, 아이들에게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 대신에 차가운 눈초리를 보내고야 맙니다.

 

가해자의 아들인 아랫집 소년에게는 가해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더욱이 차가운 냉대를 보냅니다.

 

이러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까지 떨쳐낼 수 없는 끝없는 여진이라는 떨림을 이겨내도록 하는 것은

주변 어른들의 수군거림과 말뿐인 동정이 아닌

아랫집 소년이 슈퍼에서 할머니에게 들었던 따뜻한 어른의 한마디임을 다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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