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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요약 및 리뷰_ 마이클 샌델 2회독 한 저의 인생책을 소개합니다.

마음씀씀이 2024. 5. 12.

공정하다는 착각 요약 및 리뷰_ 마이클 샌델 2 회독 한 저의 인생책을 소개합니다.

★ 공정하다는 착각 한줄평

성공한 사람에게는 겸손을 가르치는 유교 경전이 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치유를 건네는 따뜻한 이의 편지 한 통이 되는 두 얼굴의 책

★ 공정하다는 착각 세줄요약

1) 지금 사회는 성공과 성공하지 못한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능력주의가 만연해 있고, 그에 따라 승자는 오만을, 패자는 자책감을 갖게 되었다.

2) 실제로 뜯어보면 성공의 여부는 운에 상당부분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우리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건실한 공동체 의식과 겸손이 필요하다.

 

★ 공정하다는 착각 긴 리뷰

드디어 제 인생책인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해 목차 별 주요 내용 요약과 저의 생각을 리뷰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요약 및 리뷰를 보시고 기회가 되면 직접 읽어보셔도 좋을 책입니다.

책을 보고 나면 기업, 대학, 뉴스, 유튜브,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능력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외면받는 계층의 분노가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 알게 될 수 있습니다.

 

먼저 공정하다는 착각 요약 및 리뷰에 앞서 "능력주의"와 "테크노크라시"에 대한 제 개념 설명글 링크를 클릭해서 보고 오시면, 책 내용을 더 확실하게 흡수해 가실 수 있습니다.

 

 

테크노크라시 Technocracy 뜻 _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등장한 개념 설명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의 뜻과 개념을 설명드립니다.테크노크라시란 기술(Technology)과 관료(Bureaucracy)의 합성어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진 전문가 즉, 기술관료가 정치 및 경제를 관리한다는

mindbowl.tistory.com

 

 

[능력주의] 과연 공정한 것인가? _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 나온 능력주의 개념 설명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한가? 오히려 불평등의 격차를 벌어지게 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마이클 샌델 교수의 베스트셀러 '공정하다는 착각'의 내용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능력주의(Meritocracy) :

mindbowl.tistory.com

 

그럼 마이클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구성된 목차 순서대로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목차별 요약

Chapter 1. 승자와 패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

2016년 미국 대선 결과 트럼프가 당선된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트럼프의 말과 행동을 보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부는 포퓰리즘의 준동을 단지 이민과 다문화주의에 맞선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의 반발로 치부하는 등 포퓰리즘적 저항을 편협한 시각이라고 무시하거나, 이를 경제적 불만의 표출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승리한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수십년 동안 불평등이 커지고 상류층에게는 혜택을,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력감을 안겨준 세계화에 대한 분노의 판결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위계 질서 상 상층부를 차지하는 데 익숙해져 있던 백인 남성 노동계급은 미국이 점차 세계화됨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위가 밀려나게 됩니다. 또한 오랫동안 직업으로 삼고 있던 일이 값싼 외국 노동자와 첨단 기계에 대체되며 시대 변화에 대한 방향 상실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엘리트 층은 세계화에 따른 이득을 엄청나게 챙기며, 빈부의 격차가 더 벌어짐과 동시에 능력주의에 따른 승자와 패자로 점차 더 나뉘게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계층 이동의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 아메리칸드림은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갖고 있어 능력과 노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능력주의는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있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지만,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덕적 또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가져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동안 능력주의는 사회의 공정함을 유지하는데 그에 대한 해답으로 많이 제시되었고, 이미 많이 퍼져있습니다.

 

"하면 된다"라는 말은 능력주의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로도 "You can make it if you try(하면 된다)"가 사용될 정도로 특히 중도 좌파인 민주당에서 공정한 미국사회를 목표로 할 때 "하면 된다"는 즉 능력주의적인 선거 구호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라는 말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승자에게는 갈채를, 패자에게는 조롱을 하는 말이 됩니다.

패자 스스로마저도 재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공'을 해석할 때 재능과 노력에 대해 보상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성공을 한 사람은 '다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성공을 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 탓을 할까? 다 내가 못난 탓인데'라고 여기게 됩니다.

 

능력주의의 폭정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명망이 추락했다'는 좌절감 또한 맛봐야 하는 것이 능력주의의 잔혹함입니다.

Chapter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동일한 출발점
동일한 출발점

 

능력 위주로 보상하는 사회는 언뜻 봐서는 매력적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하고, 개인이 가진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체계가 제대로 동작할 경우에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운명이 우리 손 안에 있다는 생각, 우리의 성공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좌우되지 않으며 오직 우리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전제로 깔려있습니다.

 

'누구나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말 안에는 능력과 노력만으로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즉, 우리 각자가 삶에서 주어진 결과에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우리 스스로 얻는 것들인가?, 받는 것들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그럴 만해서 성공했다'는 신념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미국인은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라는 말은 우리가 섭리론과 능력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과연 위대한 것이 선량한 것인가?

위대한 성공을 한 사람들은 선량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악한가?

 

과연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가?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성공은 자신의 덕인가?
성공은 자신의 덕인가?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하는 마이클 샌델 교수는 종종 학생들에게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덕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1990년대를 시작으로 점점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따라 얻은 것"이라는 대답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하버드대학 등 아이비리그 대학에는 상위 1%의 소득 수준 가정의 학생의 수가 하위 50% 소득 수준 가정인 학생의 수보다 많습니다.

또한 지금은 많이 없어졌으나 학교 기부금을 내는 가정의 학생에게는 성적이 모자라지만 입학이 가능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회적 상승은 정말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따라 얻은 것일까요?

 

다른 질문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느라 자기 신장을 판 중국 10대 학생의 기사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묻자

자유의사에 따라 자기 신장을 팔기로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많았고,

특히 부를 이룩한 사람은 그만한 능력을 입증한 것이며, 따라서 가난한 사람의 신장으로 생명을 연장해도 된다.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고 합니다.

 

부유한 사람은 많은 돈과 가난한 사람의 신장까지 가질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두가지 부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개인의 책임을 특히 강조함으로써 빈부격차 등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기업에서 개인으로 옮기려는 태도

둘째, 열심히 일하고 규칙대로 행동하면 누구나 자기 재능과 희망이 허용하는 한 사회적 상승을 할 수 있으리라는 약속으로 빚어지는 승자의 오만, 패자의 좌절감

 

클린턴은 이렇게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미국 시민에게 주어진 과제 즉 신이 부여한 재능과 스스로의 결의에 따라 최대한 사회적 상승을 성취하는 것, 이는 단순히 권리가 아닙니다. 숭고한 책임입니다. 기회와 책임,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어느 한쪽만 선택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능력주의가 만연한 지금 "You deserve(자격이 있다)"라는 말은 1970년대에 비해 사용량이 4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 할 자격이 있다"라는 말의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능력주의가 퍼지며 개인의 책임에 따라 자격이 부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은 시민 간의 공동체 의식, 연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공하리라 믿어도 되고, 실패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게 옳기에, 실패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말이 공감을 얻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능력주의의 혹독한 면입니다.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더 많은 대학진학이 해답일까?
더 많은 대학진학이 해답일까?

트럼프는 자신이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녔습니다. 수준이 높은 학교를 나왔고 성적이 뛰어났다고 본인이 바로 엘리트라고 말합니다.

바이든 역시 전 학년 장학생으로 로스쿨에 입학했고, 상위 50% 성적으로 졸업했고, 3개 학위를 동시 취득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성적에 대해 발설하는 것을 막으러 다니느라 애썼고, 바이든은 불우 학생에게 주는 등록금 부분 면제 장학금을 받았고, 실제로는 1개 학사 학위만 겨우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들 또한 거짓말을 무릅쓰고서라도 학력을 부풀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학력이 좋으면 그만큼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대학 학력의 무기화, 그것은 능력주의가 얼마나 폭정을 자행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요즘은 불평등의 원인을 교육의 불평등이라고 보고, 더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도록 돕는 복지정책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에만 집중하는 일은 역효과를 낳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적 명망이 더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판을 가르는 깊은 균열 중 하나가 대졸자와 비대졸자 사이의 균열입니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고학력 유럽인들이 가장 반감을 가지는 대상을 조사했는데,

무슬림, 빈곤층, 비만인, 시각장애인을 제치고 저학력자에 대해 가장 반감을 가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학력 이외의 요소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보지만, 낮은 학력에 대해서는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과연 사회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일까요?

교육과 학력을 개인 책임이라 여기는 요즘, 대학 진학이 계속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비대졸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화되는 위험성도 함께 커진다는 것을 염두해야 할 것입니다.

 

Chapter 5. 성공의 윤리

귀족제 사회
귀족제 사회

만약 당신이 부자라면 과거의 귀족제 사회를 선호할까? 요즘의 능력주의 사회를 선호할까?

당신의 부와 특권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회를 선택하고자 한다면 귀족제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귀족제 체제에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자신의 특권이 큰 행운임을(스스로의 성취가 아니라) 인식할 것입니다.

한편 능력주의 사회에서 최정상까지 치고 올라갔다면, 자신의 성공은 물려받은 게 아니라 쟁취한 것임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귀족적 특권과 달리 능력주의적 성공은 스스로의 자리를 스스로 얻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자들이 오히려 귀족제보다 능력주의 체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귀족제에서는 부잣집에 태어나서 재산을 물려받을 때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기도 하지만, 능력주의에서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이 나타납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성공을 찬양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은,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혹독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능력주의는 계층 이동성에 초점을 뒀을 뿐, 불평등을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단지 부자의 자식과 가난한 자의 자식이 능력에 근거하여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만 볼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능력주의적 경쟁 과정에서의 불평등은 없는 것일까요? 누구나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 맞을까요?

 

재능이 과연 자신만의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내가 이런저런 재능을 갖게 된 것은 내 노력이 아니라 행운의 결과인 것은 아닐까요?

둘째, 내가 가진 재능에 대해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이 행운의 결과인 것은 아닐까요?

 

만약 NBA에서 뛰어난 농구실력으로 재능을 인정받는 르브론 제임스가 르네상스 시대 처럼 농구선수가 아닌 프로스코 화가가 각광을 받던 사회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능력주의 신념의 매력 대부분은 '우리 성공은 우리 몫'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재능의 우연성을 외면하고, 노력의 중요성을 과장합니다.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대학은 현대 사회에서 기회 배분 시스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상위 계층으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학위'를 발급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능력주의적 열망에 피를 돌게 하는 심장이 되었기 때문에, 명문대 입시는 과열되었습니다.

 

SAT는 본래 교과성적은 보지 않고 천부적 지능만 테스트 하기 위한 제도로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신 성적보다 SAT 점수는 집안 소득 수준과 연관성이 더욱 크다고 밝혀졌습니다.

SAT는 사설 모의시험이나 과외를 통해 점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SAT 점수는 올릴 수 있는 제도입니다.

 

오늘날의 부유한 가정은 그들의 특권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를 생각할 때, 막대한 재산을 상속해 주는 방법 외에, 학력을 갖추게 하여 성공을 결정하는 입지를 마련해 주기 위해 부단히 도 애를 씁니다.

 

대학은 더이상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류 아이비리그 대학은 애초에 불우한 배경의 학생들이 적게 뽑히므로, 사회적 이동 기여도가 낮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대학들은 기회를 늘리기보다 특권을 공고히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능력주의에서 승자의 입지를 공고히 해주는 역할을 대학이 하고 있습니다.

Chapter 7. 일의 존엄성

능력주의 시대는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곤경만이 아니라 일의 존엄성을 깎아내리는 더 잔혹한 상처를 입힙니다.

세계화에 뒤처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종사하는 일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일례로 심슨에서 심슨의 아버지인 호머심슨은 대표적인 블루칼라이며, 무능하고 우둔하며 놀림감이 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렇듯 학력이 없는 노동계급의 사람들은 이렇게 사회적 명망이 실추되는 상황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블루칼라 호머심슨
블루칼라 호머심슨

 

워런버핏은 억만장자 투자가인 자신이 그의 비서보다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는 사실을 알고 왜 자본소득이 근로소득보다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지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사실 금융업은 자본을 돌게 해서 경제활동을 돕는 업종이지 그 자체만으로 생산적이지는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20년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 속에서 배달원들, 방문 의료서비스 담당자들, 요양보호사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도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시장 사회에서는 우리가 버는 돈과 우리가 공동선에 기여한 정도를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능력주의가 '우리는 우리가 노력한 만큼 받는다'라는 생각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비롯된 혼동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건실한 공동체 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사회적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실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겸손함'만이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서게 하고, 더 관대한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개인적 리뷰

공정하다는 착각은 미국인인 마이클 센델의 관점에서 미국에서 공정함을 찾기 위한 해답으로 능력주의라는 것이 받아들여졌고, 이를 통해 승자의 오만, 패자의 절망감, 빈부격차, 포퓰리즘이 대두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한국인인 저 역시 한국에도 만연해 있는 능력주의를 생각하며, 이 책의 내용에 공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능력주의는 미국보다 역사가 짧지만, 더욱 가파르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지만, 불과 50년 만에 부모들 자신과는 달리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갖은 뒷바라지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급격히 잘 살게 된 만큼 급격히 학력주의와 능력주의가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과 같은 수준의 능력주의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유퀴즈 같은 방송프로그램에서는 수능 만점자, 주식으로 대박 난 사람, 성공한 연예인, 사업가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 사람들의 능력으로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이겠으나,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진 않으셨나요?

유튜브에서도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겸손하지 않고 내세우기 바쁩니다.

이런 모습들이 능력주의를 더 고착화시키고, 그 안에 들지 못한 사람은 자격 없는 사람으로, 실패한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저는 이 공정하다는 착각 이라는 책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은 공동체 의식을 되찾기 위한 답으로 능력주의는 답이 안된다고 말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의 행운이 많이 작용했던 것이니 겸손하라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니 자기 탓을 하지 말라고,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존엄성을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를 저도 함께 바라며

저의 인생책 공정하다는 착각의 리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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